구매·판매자 모두 이익, 윈윈 서비스
선발업체 카팩스, 30억건 정보 손금보듯
자동차를 구입하는 건 여간 고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격에서 디자인, 연비까지 따져 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건상 중고차를 산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긁히거나 찌그러진 곳은 없는지, 마일리지가 너무 높지 않은지, 주행할 때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중고차 구입에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과거 사고 기록이다. 예전에 큰 사고가 있었다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중고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가 활기를 띠고 있다. 중고차 이력 조회 서비스는 중고차를 사고팔 때 거래 대상 차량이 사고가 났었는지, 마일리지를 조작하지 않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것. 중고차를 거래할 때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미국에서 중고차 이력 조회는 중고차 거래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정보의 가치가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 중고차에 대한 사소한 정보 하나가 가격을 크게 좌우한다. 아울러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중고차를 파는 쪽에 정보가 거의 집중돼 있다. 고의로 숨겨진 정보는 사는 쪽에 심각한 경제적, 물리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중고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중고차시장의 정보 불균형 문제를 풀어줄 훌륭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는 대개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인터넷에서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자동차 이력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차량의 이력을 조회할 때는 VIN(Vehicle Identification Number)이 사용된다. VIN은 각 차량이 갖고 있는 고유한 번호. 알파벳과 숫자 17자리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 정부가 1981년 차량을 추적하는 표준으로 VIN을 도입했다. 일종의 자동차 지문인 셈이다. 고객이 VIN으로 중고차 이력 조회를 요청하면 차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은 리포트가 날아온다. 중고차 이력 리포트에는 차량에 대한 상세한 설명, 사고 내역, 마일리지 조작 여부, 소유권 변동 사항 등이 기록돼 있다.
중고차 이력 리포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고 내역. 중고차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지만 사고 영향으로 잠재적 문제를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고차를 살 때 사고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고차 이력 리포트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마일리지 조작 여부다. 일부 악덕 중고차 딜러들이 차량의 주행기록계를 거꾸로 돌려 마일리지를 낮추는 방식으로 고객을 속이곤 한다. 마일리지는 중고차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를 활용하면 주행기록계를 조작했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중고차 이력 조회 서비스 회사가 주행기록계 조작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차량의 각종 기록을 대조하는 것. 예컨대 지난해 정기검사에서 마일리지가 5만마일로 기록된 자동차가 올해 소유자가 바뀌면서 4만마일로 줄었다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고객에게 주의를 환기해준다.
자동차 이력 조회는 구매자에게만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판매자도 덕을 볼 수 있다. 자동차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사고를 내지 않은 판매자는 오히려 시세보다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고차를 내놓기 전에 미리 자동차 이력 조회서를 준비해 구매자에게 보여주는 일도 늘고 있다. 구매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것이다.
중고차 이력 조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미국 차량관리국(DMV)에서 발급하는 일종의 차적 증명서인 ‘타이틀’(Title)을 참고해도 기본적인 사고 기록은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사고는 타이틀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이틀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돈세탁을 하듯 타이틀을 세탁해 사실상 폐차했어야 할 차를 수리, 판매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단체인 컨슈머리포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고로 보험사에서 수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등급인 ‘토털’(Total) 판정을 받은 차의 상당수가 수리돼 버젓이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93~1999년 토털로 판정된 차의 20%가 수리된 후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고기록까지 지워져 우려를 낳았다. 폐차장으로 갔어야 할 차가, 사고기록까지 지워진 채 아무런 대책 없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는 단순히 DMV 기록뿐만 아니라 경찰, 보험회사 등 각종 유관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통합, 관리해 타이틀 조작을 피할 수 있다.
중고차 이력 조회 서비스 회사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카팩스(www.carfax.com).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의 선구자로 꼽힌다. 카팩스는 1981년 이후 등록된 거의 모든 차량의 정보를 갖고 있다. 카팩스가 보유하고 있는 중고 자동차 정보가 30억건을 넘는다. 카팩스는 DMV를 비롯해 보험사, 경찰서 등 다양한 기관에서 차량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카팩스에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만 5,300여곳에 달한다. 그 결과 보험처리가 되지 않은 사소한 사고까지 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카팩스는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훨씬 전인 1986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팩스로 자동차 이력을 알려줘 ‘카팩스’(Carfax)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요즘은 고객이 요청하면 e메일로 알려준다. 비용은 1건을 확인하는데 19달러99센트,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것은 24달러99센트다. 고객들이 중고차를 구입할 때는 최종 후보에 차량 몇 대를 올려놓고 무제한 서비스를 신청해 확인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카팩스의 웹사이트는 매달 18억3,000만명이 방문할 만큼 인기가 높다. 중고차 딜러들을 위한 카팩스온라인(www.carfaxonline.com)도 운영하고 있다.
카팩스는 지난 3월 환불보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것. 자사의 정보가 차량관리국(DMV)의 정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아 생긴 피해를 구제해주는 것이다. 카팩스가 피해 고객이 구입한 차를 구매가격에 재구입해 준다.
익스피리언오토모티브(www.experianautomotive.com)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현재 4억5,000만대의 중고차 기록을 갖고 있다. 모회사인 익스피리언이 고객관리컨설팅업체인 만큼 주요 고객은 중고차 딜러들이다. 중고차 딜러들이 고객에게 차를 팔 때 차량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알려줘 신뢰를 심어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익스피리언오토모티브는 최근 도요타와 남부지역의 5개주의 도요타 중고차 딜러들에게 차량 이력 정보를 제공하는 협력을 맺었다. 도요타 딜러들이 인터넷 포털에서 곧바로 조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가 뿌리내리고 있지만 일각에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지적하고 있다. 자동차 이력 조회 회사들이 모든 사고기록을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동차 이력 조회 전문회사의 주장과 달리 일부 주에서는 경찰기록을 볼 수 없어 정확한 이력을 조회하지 못한다. 실제로 미국 지상파 방송인 CBS는 최근 자동차 이력 조회 서비스의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다뤘다. 전문가들은 “중고차를 구입할 때 자동차 이력 조회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아 이중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뉴욕=김경근 특파원 zeneca@unitel.co.kr
출처:자동차10년타기운동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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