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 무시하면 반드시 실패”
천하제일 화공(花工)도 만화(萬花)의 씨앗을 갖지 못하면 천리마의 야생 기질을 화폭에 담지 못한다” “시대의 부름을 받은 장수여, 불사춘의 창조적 행보로 전인미답 비즈니스 신지도에 화룡점정 행적을 찍을 수 있는 화공이 되어주소서.”
상식을 비웃는 ‘돈키호테식 경영’으로 거대한 제국을 일궜으나, 한때의 성공에 취해 주위의 조언에 등을 돌린 나머지 국민 경제에 부담만 안긴 채 잊혀져 간 경영자들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1991년 자동차 관리 서비스 대행 업체인 ‘트리피아’를 설립, 창업 5개월 만에 2만여 명의 회원을 모으며 첫해에 1,500억원의 매출을 일궈냈던 차지혁(46) 씨. 그가 윤창렬 굿모닝시티 전 회장에게 건넨 자신의 자서전 《청년 차지혁, 그 꿈과 야망은 녹슬지 않는다》 안쪽에 쓰인 이 글귀는 그의 영욕을 상징한다.
트리피아를 운영하며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다 93년 여직원 성폭행과 회사 부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지난 99년 출소해 벤처기업‘미다스칸’을 세운 그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한때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계획으로 투자자를 현혹한 혐의로 고발당하며 날개가 꺾이고 만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차씨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희대의 사기꾼’이라며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반면, 인터넷에는 그의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이 카페까지 개설해 변함없는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차씨의 카페 ‘차지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윤세영(가명) 씨는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카페를 결성해 지지를 보내는 경영자는 국내에서는 차씨가 최초일 것”이라며 “초등학교 수료가 학력의 전부인 그가 학력의 벽에 막혀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부정적인 면모에도 불구,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탁월한 기획력과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다. 트리피아, 미다스칸은 그의 창의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실례. ‘미다스칸’을 차린 뒤 그는, 시내 곳곳에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이를 통해 고객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가상백화점’과 돈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노머니 매직 서비스’ 등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역시 차지혁’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과거 13대 총선을 앞두고 후보 수십여 명의 선거 기획 의뢰를 수주하며 정치 기획 분야에서도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훗날 기업을 운영하면서 보여준 이러한‘이벤트 경영’은 정치 활동을 하면서 익힌 필살의 무기였던 셈. 하지만 당시 정치권에서 터득한 ‘노하우’는 경영자로서 도약을 꿈꾸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현재 차씨는 전자상거래 사업을 기획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 부흥기에 골드뱅크(코리아텐더로 변경)를 창업해 한때 수백억원 규모의 부를 거머쥔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도 무모한 돈키호테형 경영자의 전형으로 꼽힌다.
지난 1999년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회사를 설립해 코스닥 시장의 활황을 주도한 그는, 국내 벤처 1세대를 대표하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증시가 침체에 빠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고, 2000년 3월 미국계 릴츠 펀드의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에 말려 회사를 뺏기게 된다. 이후 재기를 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엠스테이션닷컴’을 창업, 한때 골드뱅크 사장 복귀설까지 나돌았지만 개인 비리로 꿈을 접고 만 그는, 올해 한신코퍼를 인수해 재기의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수백억원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가 새롭게 불거지면서 일본으로 도피하는 등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경영자들의 돈키호테식 행보가 기업을 멍들게 하는 것은 비단 벤처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중견 그룹도 최고 경영자가 상식을 깨는 역 발상(?)을 유감없이 발휘한 나머지, 그룹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거나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는 곳들이 적지 않다.
한때 재계의 총아로 떠올랐던 ‘거평’이 대표적인 사례. 거평은 90년대 들어 대동화학, 94년에는 대한중석을 인수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재계의 시선을 한 몸에 모았다. 당시 나승렬 회장은 재계의 주목을 받으며 한 공중파 방송의 휴먼 다큐멘터리<성공시대>의 주인공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나 회장은 지난 98년 초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남 투자증권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악수를 둬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한상엽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과감한 경영과 독단적 경영을 현실에서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독단적 경영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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